카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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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SA[1]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
본명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출생
사망
1883년 3월 14일 (향년 64세)
국적
(1818 ~ 1845)무국적[2]
직업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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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 (1777~1838)
어머니 헨리에테 마르크스[3] (1788~1863)
형제자매
9남매 중 셋째
배우자
예니 마르크스[4] (1843년 결혼, 1881년 사별)
자녀
7명
학력
묘소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종교

1. 개요2. 명칭3. 생애4. 사상5. 가계6. 평가7. 어록8. 저서9. 대중 매체10. 여담11.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독일의 학자, 사상가, 작가, 언론인.

철학·사학·경제학·사회학에 두루 걸쳐 지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공산주의를 체계화하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통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한 분석을 개진하였다.

그의 사상인 마르크스주의는 주로 철학적 측면에서는 헤겔변증법포이어바흐유물론으로부터,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애덤 스미스데이비드 리카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는 각 역사적 시대의 경제적 생산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회구조가 그 시대의 정치, 법, 종교, 예술 등의 기초가 되며, 따라서 원시공산제 사회의 해체와 계급제 사회의 형성 이래의 모든 역사는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 간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보았다. 즉 그의 근본적인 사상은 한마디로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로 요약될 수 있다.

1818년 프로이센 왕국트리어에서 출생하였다. 청년헤겔학파로 활동한 초창기에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후에 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자로 전향한다. 1842년 평생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조우, 1845년과 1848년 각각 『독일 이데올로기』와 『공산당 선언』을 그와 함께 공저하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경제학 연구에 착수한다.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의 독일 담당 서기로 선출되었다. 1867년 『자본론』 제1권을 출판한다. 1883년 사망하였으며 사후에 엥겔스가 그의 원고를 바탕으로 『자본론』제2, 3권을 출판한다. 그의 묘지는 영국 런던의 하이게이트에 위치해 있다.

2. 명칭 [편집]

Karl Heinrich Marx의 이름을 한국어로 쓸 때, 독일어 표기법에 의하면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라고 쓰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예전부터 '마르크스', '맑스'로 함께 불려진 까닭에 요즘에도 '칼 맑스'라고 표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어 표기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6] '맑스' 표기법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원음과 비슷한 발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Marx'는 모음이 하나밖에 없는 1음절짜리 이름인데 '마르크스'로 표기하면 4음절이 돼버리니 한글 그대로 발음하면 1음절짜리가 원음과 비슷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마르크스보다는 맑스가 독일어 발음에 좀 더 가꺼운 것 또한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받침 발음을 할 수 없는 일본에서 '마', '루', '쿠', '스'(マルクス)의 네 음절로 나누어 표기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크스로 표기가 일반화된 데에는 일본의 중역(重譯)을 통해 그의 사상과 이론이 국내에 소개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 카를 마르크스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으므로 여기서는 카를 마르크스로 표기하는 것을 따르기로 한다.

3. 생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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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상 [편집]

마르크스 이론의 독특성은 그의 정신적 원류라 할 수 있는 헤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역사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띤다는 헤겔의 관점을 가져오되, 인간의 이성의 발전과 종착역을 설정한 헤겔의 관념론과는 다르게, 인간의 노동에 따른 생산 양식의 발전과 이로 인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경향적 이행의 유물론을 주장하였다.[7]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이지만,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사적 유물론' 등은 마르크스가 만든 용어가 아니라 사후 엥겔스나 다른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붙인 용어이다.

4.1. 변증법적 유물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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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마르크스주의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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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마르크스 경제학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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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공산주의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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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사적 유물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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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계 [편집]

  • 父 하인리히 마르크스 (1777 ~ 1838) / 母 헨리에테 (1788 ~ 1863)
    • 카를 마르크스 (1818 ~ 1883) / 妻 예니 마르크스 (1814 ~ 1881)
      • 장녀: 예니 카롤리네 (1844 ~ 1883) / 사위: 샤를 룽게 (1839 ~ 1903) 저널리스트
        • 외손자: (1873 ~ 1874) 요절
        • 외손자: 장 룽게 (1876 ~ 1938) 저널리스트
        • 외손자: (1878 ~ 1883) 요절
        • 외손자: 에드가 룽게 (1879 ~ 1950) 의사
      • 차녀: 예니 로라 (1845 ~ 1911)[8] / 사위: 폴 라파르그 (1842 ~ 1911) 사회주의 운동가
        • 외손자 2명, 외손녀 1명: 어려서 요절
      • 장남: 에드가르 (1847 ~ 1855) 요절
      • 차남: 헨리 에드워드 가이 (1849 ~ 1850) 요절
      • 3녀: 제니 에벌린 프란세스 (1851 ~ 1852) 요절
      • 4녀: 제니 줄리아 엘레노어 (1855 ~ 1898)
      • 성별 불명: 요절 (1857)
      • 사생아 추정: 프레데릭 데무스 (1851 ~ 1929) 가정부 헬렌 데무스(1820 ~ 1890) 소생

6. 평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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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록 [편집]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공산당 선언》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공산당 선언》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이 국가를 장악하기 전까지는 그 자신이 민족적이다.

《공산당 선언》
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9]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한 시대의 지배 사상은 늘 지배 계급의 사상이다.

《독일 이데올로기》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

《루이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
하느님조차도 하지 못하는 일을, 이 해낸다.

《경제학 - 철학 수고 1844》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인간 해방을 위한 두 가지의 강력한 무기는 인간의 두뇌와 인간의 심장이다.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이다.
인간은 운명의 지배자다. 그러나 돈을 숭배하면 돈이 인간을 지배한다.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이것이 모든 자본가와 모든 자본주의국의 표어다.

《자본론 제1권》
종교에서는 인간 자신의 두뇌의 산물이 인간을 지배하듯이,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인간 자신의 손의 산물이 인간을 지배한다.

《자본론 제1권》

8. 저서 [편집]

대표 저작 (1818~1883년)
  • 1839년,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 철학의 차이》[11]
  • 1842년, 《역사 법학파의 철학적 선언문》(The Philosophical Manifesto of the Historical School of Law)
  • 1843년,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 1844년, 《1844년 경제학 - 철학 수고》
  • 1845년, 《신성 가족》
  • 1845년,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Theses on Feuerbach)
  • 1846년,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12]
  • 1847년, 《철학의 빈곤》(The Poverty of Philosophy)[13]
  • 1847년, 《임금 노동과 자본》(Wage-Labour and Capital)
  • 1848년, 공산당 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
  • 1851년,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 1852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The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Napoleon)
  • 1858년, 《정치 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 1862년, 《잉여 가치론》(Theories of Surplus Value), 3권
  • 1865년, 《임금(혹은 가치), 가격 그리고 이윤》(Lohn, Preis und Profit/Value, Price and Profit)
  • 1867년, 자본 I》(Das Kapital)
  • 1873년, 《프랑스 내전》
  • 1875년, 《고타 강령 비판》(Critique of the Gotha Program)
사후 저작 (1883년 이후)

9. 대중 매체 [편집]

  • 애니메이션 - 领风者(영풍자, The Leader)
  • 소설
    • 《프로메테우스》, 갈리나 I. 세레브랴코바 지음, 김석희 옮김. 소련에서 출판된 마르크스의 전기 소설로, 소련 공산당 부속 기관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를 비롯한 학자들의 감수를 거쳤다고 한다. 한국어판은 일본어판의 중역인데 아쉽게도 현재 절판.
    • 《디어 맑스》, 손석춘 지음.
    • 《마르크스 서울에 오다》, 박홍순 지음.
    • 고종, 군밤의 왕에서는 흥선대원군이 당수로 있는 조선의 만민공산당 놀음에 사이비 공산당이라며 기함하고 있다. 웃긴 건 그 사이비 공산당인 만민공산당이 1대 참의원 선거에서 원내 1당이라는 독보적인 성과를 거둬버리며 전 세계 공산주의/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는 것...[17] 이후 본인에게 직접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전봉준에게 하숙집을 제공한다. 살림에 도움도 되고 심심함도 풀 겸 거두어서 가르쳤다고. 이후 엘레노어와 전봉준이 결혼하며 사돈지간이 되었고 얼마 후 천수를 누리다 사망한다.
    • 대체역사 소설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 주인공 유진 킴이오시프 스탈린으로부터 스탈린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자본론을 선물받은 후 '천마의 직인이 있는 천마신공' 드립을 쳤는데, 소설의 흥행과 함께 드립이 퍼지면서 역사 관련 커뮤니티에서 천마신공을 만든 천마신교의 초대 천마로 불리게 되었다. 이른바 공산천마.
  • 게임
    • 빅토리아 3에서 가장 먼저 사회주의를 연구한 나라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로 등장한다. 그래서 게임을 하다 보면 프랑스 마르크스, 러시아 마르크스, 스웨덴 마르크스 등을 볼 수 있다.
    • 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에서 용역 깡패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등장한다.
    • 문명 6에서 정책 카드 공산주의를 설명할 때 등장한다.

10. 여담 [편집]

  • 국내 운동권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1980년대 초반부터 알려져 1980년대 운동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는 집단은 주체사상을 추구하는 집단과 함께 운동권의 가장 지도적인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유행은 1990년대 루이 알튀세르미셸 푸코의 소개와 함께 소강상태에 이르나, 현재에도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 마르크스의 노선을 계승한 철학자로 한국 인문 사회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201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인해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재유행하는 추세에 있다.
  • 그의 딸이 아버지에게 어떤 색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빨간색이라고 답해서 빨간색이 공산주의자들의 상징색이 되었다는 속설이 있지만, 사실 빨간색은 그 이전부터 이미 좌파 내지는 진보의 이미지로 차용되어왔다.[18]
  • 위의 '생애' 항목이나 '평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 일가의 경제 관념은 경제학자 집안 맞나싶을 정도로 엉망이었는데, 그래서 마르크스 본인의 사상적 동지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금전적 지원을 많이 받았다. 마르크스는 본래 상류층 집안의 아들이었고, 이 때문인지 허구헌날 손님들을 불러서 성대한 파티를 열거나 가정부를 두어서 집안일을 떠넘기기도 했고, 자녀들에게 값비싼 옷을 입히기도 했다. 당연히 금방 돈이 바닥이 나서, 아들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굶어 죽는 막장 상황이 되자, 엥겔스가 마르크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19]. 그런데 이들은 경제 관념 뿐만 아니라 염치도 없어서, 엥겔스가 부인상을 당한 와중에 마르크스가 돈 내놓으라는 편지를 보냈다가 그로부터 수정펀치를 맞았다던가, 맏사위인 폴 라파르그[20]가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딸들을 친조카처럼 끔찍이 아낀다는 점을 악용해서, 생계비에 더해서 부인의 속옷값이나 본인의 술값까지 삥을 뜯는 등의 온갖 인성터진 짓을 수도 없이 했다(...).
  • 2018년 중국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었고 중국이 마르크스의 정통 계승자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미국, 유럽의 자유주의-사회주의 계열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마르크스의 계승자 중국'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울 목적으로 2019년 중국에서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일대기를 그린 애니메이션[21]이 제작되기도 했다.
  • 마르크스의 현손인 조셉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현재 파쿠르 선수이자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져 화제를 모았으나 거짓임이 밝혀졌다. 마르크스의 자식 중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한 자식들은 모두 딸이라서 마르크스의 후손들 중 마르크스의 성을 이어받은 사람은 없다. 마르크스의 생존한 후손들은 모두 마르크스의 첫째 딸 예니 카롤리네 마르크스와 그녀의 남편 샤를 룽게의 후손이며, 따라서 오늘날 마르크스의 후손들은 '룽게'나 마르크스가 아닌 다른 성을 이어받았을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마르크스의 후손들 중에는 마르크스의 현손녀에 해당하는 프레데리크 룽게(1955년생)와 안나 룽게(1958년생)가 있으며, 이들은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

11. 둘러보기 [편집]

[1] Fellow of the Royal Society of Arts, 왕립 예술학회 회원.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마르크스가 예술학회 회원이라는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예술이라는 단어는 미술, 음악 같은 기예(art)뿐 아니라, 인문/사회학, 나아가서는 학문 자체를 지칭하는 데에도 쓰인다.[2] 프로이센에서의 추방 이후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였다.[3] 혼전 성은 프레스부르크.[4] 혼전 성은 베스트팔렌.[5] 박사 학위 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 철학의 차이 (1841년). 지도 교수는 브루노 바우어.[6] 이 표기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단어가 들어온 1900년대 이전부터 '칼 맑스'라고 쓰인 것이 확인된다.[7] 물론 이는 마르크스의 다양한 사상적 면모들 중에서 그가 핵심으로 삼았던 과학적 공산주의의 측면을 아주 극히 단순하게 묘사한 것으로서 그의 사상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헤겔부터 포이어바흐까지의 아주 깊이 있는 공부가 요구된다.[8] 차녀가 태어난 이후 영국으로 이주해서 살았으므로 차녀 이후 자녀들의 이름은 영국식으로 지어졌다.[9] 마르크스의 무덤 묘비와 《독일 이데올로기》 서문에도 작성된 글귀이다.[10] 참고로 마르크스 사후 저작은 엥겔스가 그의 유고를 정리하여 출간한 저서이다.[11] 마르크스의 박사 학위 논문.[12] 프리드리히 엥겔스와의 공동 저술작. 마르크스주의 이해에 자본론과 함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헤겔학파와 포이어바흐, 청년 헤겔학파 등을 종합적으로 까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핵심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구체화한 저서이다. 위에 나온 신성 가족의 발전판이라 보면 되겠다. 또한 사적 유물론 개념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등장한 저서이기도 하다.[13] 공상적 사회주의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프루동 저작 《빈곤의 철학》을 비판한 저서.[A] 14.1 14.2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집필했다.[16] 자본론 4권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자본론의 내용에 포함되는 부분이지만 공식적으로 자본론에 포함되는 저작은 아니다. 카를 카우츠키가 엥겔스가 자본론 3권에 포함하지 못한 마르크스의 유고 중 '잉여 가치 학설'이라고 명명된 부분을 정리하여 출간한 책으로,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카우츠키의 것이 마르크스의 서술 의도를 왜곡하였다고 판단되어 이와 무관하게 소련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에서 재편집한 것이다.[17] 다른 정당 중 독일 사회민주당은 원내 5당에 그쳤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자들이 만족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동방에서 왠 이상한 공산당이 첫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차지해 버린 것. 참고로 이때는 공산당이 개화당에게 총리 자리를 양보해서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되었다. 두 정당 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국왕인 귀남도 개혁을 꾸준히 밀어줬기에 정책을 두고 약간의 정중한 논쟁은 있을지언정 참의원 공성전 같은 무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18] 예외가 있다면 대한민국, 미국일본. 이 세 국가에서는 빨간색이 보수 정당의 색깔이 되었다. 각각 국민의힘, 공화당, 자유민주당.[19]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네임드 공산주의 사상가이기 이전에,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막대한 재산을 모은 갑부였기에 이것이 가능했다. 마르크스 말고도 다른 사상가들의 생계비나 활동비를 지원한 적도 있을 정도다. 의외로 초기 공산주의는 기업의 존재에 대해 그다지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아서, 마르크스 본인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회사를 가장 이상적인 생산수단 중의 하나로 꼽았을 정도다.[20] 프랑스의 작가이자, 공산주의 사상가로, 1911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21] 领风者. 7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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